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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LOG/JOURNAL

21-10-26 Journal

by 텍스트 마스터 2021. 10. 26.

'마무리'의 뼈아픈 교훈

 

나는 항상 마무리가 문제가 되곤 했다. 꼼꼼하게 챙기는 부분도 있지만 정신력이 많이 필요한 일에 있어서는 마무리가 문제였다. 물고 늘어지는 힘, 뒷심이라고 할까? 그게 없었다. ADHD 대부분이 이 문제를 겪는다는 것은 진단받게 된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이다. 이미 보내버린 기회들이 얼마인고?! 최근 컴퓨터공학 분야에서 최고 저명 학술대회에 한 논문이 발표됐다. 논문 제목과 지도교수님을 보고 딱 알아봤다. 아! 논문 내용도 보고 싶지 않았다. 휴... 내가 미국에 파견 나가 있는 동안 메인으로 작업한 논문이다. 대단한 교수님의 지도를 받아서 진행한 것이니 그분의 선택에 따라서 모든 게 결정되는 게 맞다. 하지만 내가 논문의 핵심 문제를 발견했고 그 당시에는 1저자가 되는 것이 당연했고 모두들 그렇게 알고 있었다. 

 

코로나가 터지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별거하게 되고 (지금은 아니다), 미국에서 우울증 약을 먹지 않고 지냈던 것이 더 깊어져서 다시 병원에 가면서 연구를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었다. 그냥 회피했다. 포기했다. 새로운 병원에서 성인 ADHD 진단을 추가로 받고 어느 정도 각성의 효과는 알았지만, 그동안 타국에서 고생한 연구를 포기한 상처는 깊었다. 두려움에 컴퓨터는 아예 켤 엄두도 못 내고 이제 다른 일을 해야겠다. 몸 쓰는 단순한 일, 사람과 만나는 일이 적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쿠팡 플랙스에서 배송을 한 것도도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싶어서였다. 

 

긴 가방끈 만큼의 내실은 없고, 스타트업도 했으나 실패의 교훈마저도 지저분한 상황에서 모든 것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생각을 매일 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나를 사랑해주고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다. 특히 이제 두 돌이 되는 내 판박이 아들에게 아직 해줘야 할 것이 많은데... 이것을 알면 더 뭔가 변화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대단하게 변화하는 것도 없으니 아직은 '살아내기'하는 수준이다. 결국은 연구도 다시 혼자 하게 되었다. 이제 당연스럽게도 누구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지 않는다. 나도 그냥 마무리만 하자는 생각이다. 사실 이 마저도 쉬운 일은 절대 아니다. 나에겐 그렇다. 

 

오늘 그 논문을 다운 받아서 훑어보았다. 역시 내가 했었던 이야기다. 대가들이 잘 주물러서 풀어냈으니 훌륭한 한 편의 논문이 되었다. 나는 마무리를 하지 못했다. 버텼다면 1저자 또는 정 안되도 공동 1저자로 들어갔을 것이다. 인생에 만약은 없다. 과거에 집착할 것도 미래를 걱정할 것도 없다는 진리를 알았다. 다만 과거의 쓰디쓴 실패에서 교훈은 배워가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결과를 내는 것보다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스크레치가 생길 '에고'를 더 걱정하며 살아왔다. 자신감, 자존감 뭐 이렇게 정의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에고 놀음이다. 졸업하고 싶으면서도 그 과정에서 당연히 지나야 할 불편한 시간은 피하고 싶어 한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 에고의 집착이 심할수록 나의 중심은 '내면의 나의 존재의 힘'에 두어야 한다. 에고를 내세우지 말며, 참나의 현존에 만족하라!라는 아공(我空)의 진리는 오늘도 뜨겁다. 

 

아! 그래도 최고의 학회에 그 논문이 발표되었다는게 정말 기쁘다. 내 이름이 없다는게 아쉬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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