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 달 주기로 병원에 가는 날이었다. 상담에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고민을 할까 했지만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하기로 했다. 딱히 더 어떻게 해줄 수 있는 부분도 없기에 어찌 보면 형식적인 만남이기도 하다. 정말 한 달이라는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분명 어제 다녀간 것 같은데... 과연 지난 한 달 동안 무엇을 했는가? 무엇이 바뀌었는가? 더 나아진 부분이 무엇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분명한 것은 이전보다 꾸준히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런 것도 있지만 매번 혼쭐이 나면서도 꾸역꾸역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돈만 내고 한참 안 나가던 운동도 어떻게 해서든 나가려고 한다. 감정적으로는 아내와 아가에게 미안한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이 커져서 때론 울컥하기도 한다.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고 한다. 허탈하게 멍하니 있기에는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상황은 언제나 그랬다. 좀 냉정하게 보려고 하는 것 같다)
약은 더 올릴수도 없기에 지금 상태에서 더 대단한 무엇인가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이 정도 되면 약이 해줄 수 있는 것은 다하고 있다고 본다. 이제는 내 생각과 감정의 문제의 영역이다. 육체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운동도 이 정도 하면 할 만큼 하는 것이다. 앞으로 살아가려면 지금의 상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늙어가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지금이 베스트 일 수도 있다.
무기력을 오랜 시간 경험하고 있는 입장에서 본다면 뇌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육체 조건은 똑같은데 약을 통해서 각성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뭔가 성취를 통해서 도파민이 분출되었을 때는 언제 무기력했나 싶을 정도로 기운이 샘솓기도 한다. 그렇기에 앞으로 신경 써야 할 것은 뇌 건강이 아닐까 싶다. 지금 나는 반복된 실패와 좌절로 뇌가 일정 부분 제 역할을 못하는 상태임을 인정한다. 더 망가진다면 사회인으로서 구실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가장 밑바닥 깊은 곳까지 이미 왔다.
꽤 오래전부터 나의 카톡 남김 말은 "그럴 수도 있지"이다. 아내가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며 알려준 말인데 (어느 카이스트 교수가 경쟁 속에서 지친 학생들에게 해주는 말이라고 한다) 이러한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면 마음이 상당히 편해진다. 굉장히 강력한 마법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평소에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이런 나에게 이 말은 너그러움과 편안함을 준다. 패터슨 교수는 책에서 '어깨를 펴고 걸어라'라는 말을 중요한 삶의 원칙 중에 하나로 이야기 했었다. 무슨 소리인가 싶지만 움츠려 들수록 나는 더 작아지고 내가 할 수 있는 그릇 또한 그렇게 된다.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어깨를 펴고 걷자. 한 달 후 병원에 갈 때는 오늘보다 더 긍정 에너지로 가득 찬 모습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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